다양한 영화들이 눈과 귀와 마음을 풍성하게 했고, 그 덕분에 한층 더 많은 영화들을 기분 좋게 즐길 수 있었던 2013년.
한 해를 보내며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에 의해 2013년 영화 베스트 10을 뽑아 보기로 했습니다.
먼저 한국영화 부문입니다. 제가 본 영화들을 기준으로 삼았고, 따라서 경우에 따라 유수의 매체에서
베스트로 꼽힌 영화가 이 리스트에는 없을 수도 있습니다. (예: <신세계>)
10위 <더 테러 라이브>
간단평 : 한정된 자본, 한정된 공간 속에서 뽑아낼 수 있는 가장 뜨거운 형태의 결과물. 더불어 한 명의 배우를 전방위로 활용하는 법에 대한 모범적 사례이기도. 마지막 엔딩의 5초는 눈치 채는 순간 심장이 멎을 만큼 강렬하게 뇌리에 박힐 것.
9위 <잉투기>
간단평 : 아프지 않은 게 오히려 더 이상할 지금의 청춘들을, '꼰대'의 시선이 아닌 그들을 가장 잘 이해하는 동네 형의 모습으로 위로하는 영화. 새로운 배우들의 쫄깃한 연기가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투쟁의 모습을 웃기게, 그러나 아프게 전한다.
8위 <러시안 소설>
간단평 : 영화와 문학의 우아한 결합. 소설을 읽듯 유려하고, 소설 속을 거닐 듯 나른한 느낌. 분리될 수 없는 삶과 예술의 관계를 저예산 영화의 한계를 뛰어넘은 아름다운 결로 그려낸 영화.
7위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
간단평 : 알고보면 '하드코어 성장영화'.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공포와의 대면 속에서, 누군가는 괴물이 되어가고 누군가는 괴물과 싸워가는 과정을 피가 들끓는 액션으로 펼쳐 보인다. 김윤석과 여진구의 대결은 올해 한국영화 속 가장 흥미로운 연기 대결 중 하나.
6위 <베를린>
간단평 : 액션을 가장 잘 찍는 감독에게, 액션을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원없이 제공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보여주는 영화. 스케일과 볼거리에 매몰되기는커녕 더 반짝반짝 빛나는 배우들의 연기에, 예상치 못하게 절절한 멜로 코드까지.
5위 <사이비>
간단평 : 말도 안될 정도의 비극. 그러나 이 나라 어딘가 반드시 존재할 것 같은 비극. 현대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믿음이라는 가면 뒤에 숨은 광기'에 대한 돌직구. 매우 도발적이지만 매우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
4위 <소원>
간단평 : 이준익 감독의 찬란한 컴백. 이렇게 가슴 아픈 이야기를 보고 난 후 이렇게 벅찬 치유의 감흥을 얻을 줄이야. 사람이 일으킨 비극은 사람만이 낫게 할 수 있다는, 사람과 세상을 더 믿고 싶게 하는 행복한 눈물을 이끌어내는 영화. 어른아이 할 것 없는 배우들의 진실한 연기는 그 행복을 더 실감케 한다.
3위 <변호인>
간단평 : 한 배우의 연기가 대단함을 넘어 위대함과 신성함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한국영화에서도 드디어 보게 되었다. 충분히 눈물을 짜낼 수도 있는 소재에 대한 예상외의 차분한 접근이 어우러지며, 영화는 굳이 후벼파는 감동이 아니라 끝난 뒤에도 쉽게 일어날 수 없는 깊고 오래 가는 파문을 남긴다. 내내 울분과 분노에 차게 하다 끝내 희망을 발견하게 하는 엔딩은 올해 한국영화 중 최상위 수준.
2위 <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 2>
간단평 : 더 이상 독립영화는 '저예산의 패기' 정도로 승부하지 않는다는 최초의 선언. 잊어선 안될 역사 속 비극을 생생하고도 눈물나게 아름답게 재현해 냈다. 많은 사람들이 모를 새로운 환경, 낯선 사건 속으로 초대하고, 무시무시한 경험을 전한 후, 숭고한 치유에까지 이르는 과정. 미적으로도, 의미적으로도 제작비의 한계를 뛰어넘어 올해 한국영화 중 최고의 수준.
1위 <설국열차>
간단평 : 봉준호 감독의 첫 비현실 세계 영화. 그래서 뜬구름 같은 얘기일 수 있을텐데도, 그걸 가지고 또 폭주기관차처럼 돌진하는 에너지의 액션 사회극을 만들어내다니. 한국 배우와 해외 배우가 한 스크린에 있음에도 전혀 어색함을 느낄 수 없게 하는 앙상블, 물리적-정서적 액션의 대담한 구현, 혁명의 진짜 의미를 묻는 용감한 문제 제기까지. 대단한 감독은 뭘 맡겨도 대단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값진 증명.
다음 포스팅에서는 외국영화 부문 2013년 베스트 10을 헤아려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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