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봉준호
주연 : 크리스 에반스, 송강호, 에드 해리스, 틸다 스윈튼, 존 허트, 고아성, 제이미 벨, 옥타비아 스펜서, 이안 브렘너
개봉 : 2013년 7월 31일
관람 : 2013년 7월 31일
등급 : 15세 관람가
설국열차에 탑승하다.
2013년 7월의 마지막날... 저는 마침내 '설국열차'에 올라 탔습니다. [미스터 고]와 함께 2013년 여름 최고의 기대작이었던 만큼 영화 개봉과 동시에 서둘러 탑승 티켓을 끊은 것이죠.
너무 기대가 크면 그러한 기대를 충족시키기 어렵기에 실망도 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기대작이 개봉할 때마다 너무 과도한 기대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설국열차]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결국 과도한 기대감을 안고 극장에 도착한 저는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극장 안을 가득 채운 관객들 틈에서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빨리 '설국열차'가 힘차게 달리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간혹 너무 어린 탑승객도 보였고 (15세 관람가라고는 하지만 잔인한 도끼 액션씬 등 어린 관객이 보기엔 부적합한 영화입니다.) 영화가 시작한 후에는 제 앞의 관객이 임산부인 탓에 자꾸 뒤척여서 영화에 집중하는데 방해를 주기도 했지만 (영화를 볼 때 고개를 앞으로 숙이면 뒷사람이 안보입니다.) 2시간이 언제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영화 속에 푹 빠졌었습니다.
역시 봉준호 감독의 영화답게 영화 자체의 재미보다는 영화를 보고 난 이후의 여운이 더 짙게 남았습니다. 영화가 끝나고나서 '설국열차' 안의 상황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지금부터 저는 '설국열차'라는 하나의 폐쇄된 사회 속에 담겨진 의미들을 내 나름대로 해석해보려합니다. 그렇기에 당연히 영화의 스포가 다수 포함될 것입니다.
아직 [설국열차]를 보지 않으신 분이라면 되도록이면 제 글을 읽지 않으실 것을 추천합니다. 만약 보신 분이라면 '아! [설국열차]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봉준호 감독이 만들어 놓은 작은 세상에서의 지배와 피지배의 두터운 벽. 어찌보면 '노아의 방주' 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와도 같았던 [설국열차]의 풍경과 그 속의 사람들의 이야기. 오랜만에 쭈니의 영화 이야기는 다소 비장한 표정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자! 어서 탑승하여 주시길... ^^
인간의 욕심이 만든 빙하기... 그러한 욕심으로 열차는 달려간다.
[설국열차]의 설정은 이러합니다. 지구 온난화로 인류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자 각국의 정상들은 CW-7이라는 물질을 대기권 밖에 살포하기로 결정합니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의 유일한 대책이라 믿었던 CW-7은 오히려 지구에 빙하기를 가져왔고, 그로인하여 지구는 꽁꽁 얼어붙게 됩니다.
[설국열차]의 장르가 SF인 이유는 CW-7의 살포로 빙하기를 맞이한다는 설정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구 지구 온난화 문제는 바로 지금 현재 우리 인류가 맞이한 위기이기도 합니다. [설국열차]가 SF 영화이면서 다른 SF 영화들과는 달리 편안하게 볼 수 없는 이유는 SF 적 상상력과 현실이 뒤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지구 온난화에 대한 인류의 대책이 흥미롭습니다.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이 아닌 CW-7이라는 인위적인 물질의 살포를 결정한 것입니다. 왜 [설국열차] 속의 인류는 지구 온난화의 해결 방안으로 온실가스를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을 선택하지 않고, CW-7 살포라는 검증되지 않은 위험한 방법을 선택한 것일까요?
그것은 인간의 욕심 때문입니다. 과학의 발달로 편리함을 얻은 인간. 그러나 그로인하여 지구의 환경은 파괴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파괴된다면 인간 역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문제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으면서 우리 인간들은 한번 얻은 과학에 의한 편리함을 쉽게 포기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영화에서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지구 온난화도 해결하고, 과학에 의한 편리함도 누리는 방안으로 CW-7이 선택됩니다. 그리고 인간의 욕심, 이기심, 과학에 대한 맹신은 빙하기라는 참사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러한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은 [설국열차]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키포인트가 됩니다.
커티스(크리스 에반스)를 비롯한 사람들은 빙하기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설국열차'에 가까스로 탑승합니다. 하지만 '설국열차'에 탑승하였다고 해서 그들의 생존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설국열차'에 탑승하기로 예약이 되어 있던 사람들은 열차의 앞칸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지만, 빙하기를 피해 억지로 '설국열차'에 무임승차한 사람들은 열차의 뒷칸에서 짐승보다도 못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에 '설국열차'의 총리인 메이슨(틸다 스윈튼)은 말합니다. 우리에겐 각자 정해진 자리가 있다고. 내 자리는 앞칸이고, 여러분의 자리는 뒷칸이라고... 그러한 강압적인 메이슨과 군인들의 태도에 뒷칸의 사람들은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영화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빙하기라는 재난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몇명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설국열차'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씩 양보를 한다면 '설국열차'는 훨씬 안전하고 행복한 마지막 살아남은 인간의 보금자리가 되지 않을까? 라는 순진한 생각을 한 것이죠.
하지만 뒷칸의 사람들에게 먹을 것과 안락함을 나눠주려면 앞칸의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조금씩 덜어내야합니다. 비록 지금 넘칠만큼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더라도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온 것을 쉽게 내주려 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이기심이며 욕심입니다. 그러한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이 지구에 빙하기를 가져왔듯이, '설국열차'에서는 뒷칸 사람들의 반란이라는 끔찍한 폭력사태를 불러일으킵니다.
커티스는 지배와 피지배의 벽을 깰 수 없다.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는 마지막 공간 '설국열차'. 그곳은 오랜 세월동안 인간이 만들어 놓은 지배와 피지배의 불합리적 사회의 축소판입니다. 아주 오랜 세월동안 인간 사회에서는 계급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민주주의라는 명분아래 눈에 보이는 계급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지배층과 피지배층은 자본과 권력의 이름 아래 나눠져 있습니다.
커티스는 그것을 깨부수려합니다. 물론 그가 처음 반란을 일으킨 것은 단순하게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앞칸의 사람들이 뒷칸의 사람들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조금씩 나눠주었다면 커티스의 반란은 없었겠죠. 아니 어쩌면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여전히 반란을 벌어졌을지도 모르겠군요.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으니까요.
암튼 처음 커티스의 반란은 그저 좀 더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욕망 때문입니다. 앞칸의 사람들과는 달리 짐승만도 못한 대우를 받는 뒷칸의 사람들, 커티스는 그러한 불평등을 고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가 동료들의 희생 속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열차의 칸을 한칸씩 전진해 나갈 때 커티스는 뒷칸의 사람들도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을 갖게 됩니다.
정체불명의 단백질 블록을 먹으며 17년을 버틴 생활. 하지만 앞칸의 사람들은 1년에 두번씩 생선 초밥을 먹고, 온실에서 과일 키우며, 미용 서비스, 의료서비스, 교육 서비스 등 온갖 안락함을 즐기고 있습니다. 어쩌면 커티스의 반란이 성공을 거두면 뒷칸의 사람들 역시 앞칸의 사람들이 가진 것들을 나눠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드디어 '설국열차'의 최고 권력자인 윌포드(에드 해리스)가 있는 열차의 맨앞칸, 엔진실에 오게 되는 커티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모르던 진실 앞에서 흔들립니다.
커티스의 정신적 지주인 길리엄(존 허트)은 커티스에게 충고했습니다. 만약 윌포드를 만나게 되면 그가 말을 하지 못하도록 하라고... 혀를 뽑아버리는 한이 있어도 그가 말을 하도록 내버려두면 안된다고... 어쩌면 말이라는 것은 인간이 가진 가장 무서운 무기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윌포드의 말에 그 어떤 폭력으로도 결코 흔들리지 않았던 커티스는 결국 흔들리고 맙니다.
사실 영화를 보며 가장 놀랐던 것은 저 역시도 윌포드의 말에 잠시 흔들렸다는 것입니다. 열차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살아남으려면 인간의 수를 제한하여야합니다. 그러지 않았다가는 끊임없이 열차에 타고 있는 인간의 수는 늘어날 뿐입니다. 열차에 자급자족 시스템이 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열차에 타고 있는 인간의 수가 계속 늘어나면 결국 열차의 자급자족 시스템에도 한계가 오기 마련입니다.
윌포드는 말합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인간의 생노병사에 맡기기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고, 결국 인위적으로 인간들 서로가 죽이도록 하여 열차 안의 인간 수를 줄일 수 밖에 없었다고...결국 커티스의 반란 역시 윌포드의 잔인한 계획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한 진실을 알면서도 커티스는 망설입니다. 왜냐하면 월포드는 자신의 후계자 자리를 제안했기 때문이죠. 이미 열차의 가장 맨 뒷칸에서 생활을 했고, 반란을 일으켜 한칸씩 앞으로 전진하며 앞칸의 안락함을 눈으로 확인한 그에게 최고 권력자의 후계 자리는 달콤한 유혹이 됩니다. 결국 지배와 피지배라는 인간 사회의 구조 속에서 생활하는 것이 익숙했던 커티스는 결코 지배와 피지배의 두터운 벽을 부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노아의 방주, 그리고 아담과 이브
[설국열차]에는 많은 의미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처음 '설국열차'에 올라탄 뒷칸의 사람들은 윌포드의 군인들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결국 살아남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죽이며 인육을 먹게 됩니다.
그때 길리엄이 자신의 팔 한쪽을 희생해서 어린 아이들을 죽이는 대신 내 팔을 먹으라고 던져줍니다. 그 이후로 뒷칸의 사람들은 서로를 죽이는 대신 자신의 팔 한쪽을 희생하였습니다.
하지만 커티스는 결코 그러지 못했습니다. 에드가(제이미 벨)가 커티스에게 길리엄의 뒤를 이어 리더가 되라고 하지만 커티스는 자신은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에게는 배고픈 뒷칸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팔을 희생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커티스는 타냐(옥타비아 스펜서)의 아들인 타미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한쪽 팔을 희생합니다. 윌포드의 달콤한 제안에 잠시 흔들렸던 그가 진정한 반란군의 지도자로 거듭나는 순간입니다.
어두운 터널에서 윌포드 군대의 반격을 당하는 커티스와 반란군. 하지만 위기에 빠진 반란군을 구한 것은 횃불입니다. 횃불을 들고 커티스의 반란군을 향해 뛰어 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인류가 불을 발견하는 그 순간을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실제로 윌포드의 원래 계획은 그곳에서 커티스의 반란이 진압되고, 반란군의 처형으로 열차 안의 사람 수를 줄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불의 발견으로 다른 동물과는 다른 문화를 일으킨 인간과 같이, 커티스는 횃불 덕분에 짐승과도 같은 삶을 살던 뒷칸 사람들에게 더 앞으로 나아가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줍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저는 '노아의 방주'가 생각났습니다. 구약 성서에 따르면 기원전 30세기 경, 신의 계시에 따라 노아는 방주를 만들어 대홍수에도 살아 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노아의 방주에는 노아의 식구들과 각종 동물들이 한쌍씩 탔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방주에 타지 못했던 사람들은 대홍수로 인하여 죽음을 당합니다.
만약 노아의 방주에 노아가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이 대거 올라탄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구약 성서에 따르면 파괴적인 폭우는 40일 동안 계속 되었고, 그 긴 시간 동안 방주 안의 사람들은 배고픔과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설국열차'처럼 노아와 노아의 식구들로 이뤄진 지배층과 허락도 없이 방주에 올라탄 사람들로 이뤄진 피지배층으로 자연스럽게 계급이 나눠졌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설국열차'의 보안 설계자인 남궁민수(송강호)는 월포드가 있는 맨 앞칸의 문을 열어달라는 커티스의 부탁에 '내가 열고 싶은 것은 밖으로 향하는 저 문이다.'라고 말합니다. 어쩌면 남궁민수는 알고 있지 않았을까요? 커티스가 윌포드를 죽여도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열차라는 제한된 공간에 있는 한, 누가 되었던 누군가는 지배층이 될 것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피지배층이 될 것이며, 가진 자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내어 놓지 않으려 할 것이며, 못가진 자들은 가진 자의 것을 빼앗기 위해 또 다시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는 사실을.
그러한 반복되는 지옥도에서 벗어나는 길은 '설국열차'의 밖으로 나가는 길 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설국열차의 밖으로 나온 요나(고아성)와 타미를 보며 '아담과 이브'가 떠올랐습니다. 가장 순수한 두 아이. 어쩌면 인류의 마지막 생존자인 저 두 아이가 지배와 피지배의 불합리가 없는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기에 온 세상을 감싼 하얀 눈은 초반에는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무시무시한 공포처럼 보였지만, 영화의 마지막에는 모든 것을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인간의 순수함을 의미하는 것 같아 마지막 순간 미소를 짓게 만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압도적이다.
영화를 보며 [설국열차]에 대한 호불호가 나눠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관객을 압도할 정도로 잔인한 설정이 그러합니다.
메이슨 총리로 대변되는 앞칸 사람들의 폭력, 그러한 폭력에 대항하지 못하는 뒷칸 사람들의 무기력함. 영화의 초반에는 어서 빨리 커티스가 반란을 일으켰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바랬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막상 커티스의 반란이 일어나도 잔인한 설정은 그치지 않습니다. 뒷칸 사람들이 먹던 단백질 블록의 정체, [올드보이]의 망치 액션씬을 연상시키는 도끼 액션씬 ([설국열차]의 제작을 박찬욱 감독이 했기 때문일까요?) 그리고 마지막 열차의 진실과 윌포드의 설득력있는 궤변 등. 영화는 밝은 빛이라고는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잔인한 설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합니다.
그러면서 그로테스크한 장면이 여럿 보입니다. 틸다 스윈튼의 그로테스크한 분장은 물론, 영화 중반의 학교씬은 밝은 화면과 대비되는 그로테스크한 영상이 돋보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그로테스크함에 익숙하지 않은 분이라면 어리둥절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수 많은 캐릭터가 나오지만, 그러한 캐릭터들이 거의 대부분 죽는다는 것도 익숙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커티스의 반란이 진행되는 동안 하나씩 죽어가는 커티스의 동료들. 영화의 설정은 잔인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은 커티스의 반란이 성공하며 밝게 끝나기를 바랬던 분들에게 그들의 죽음은 암울함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마지막 끝맺음이 불분명한 것도 호불호가 갈라질 이유입니다. 열차가 전복되고, 그 안에 누가 살아 남았는지 알려 주지 않은채 [설국열차]는 그냥 요나와 타미의 모습으로 영화를 끝맺음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정말 좋았습니다. [설국열차]에 완벽하게 압도당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영화 속에 매료되었습니다.
비록 SF적 설정과 열차 안이라는 제한된 공간을 제시했지만, 빈부의 격차가 극심해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비유한 영화의 설정이 흥미로웠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력도 좋았는데, 특히 송강호는 너무 어둡기만한 영화에 가끔 웃음을 안겨줍니다. [레드 : 더 레전드]에서도 느꼈지만 외국영화에서 ([설국열차]가 외국영화는 아니지만 영화 대부분이 영어로 이루어졌습니다.) 한국 배우의 걸죽한 욕설을 듣는다는 것은 언제나 예기치 못한 웃음을 안겨줍니다.
크리스 에반스, 에드 해리스, 제이미 벨, 틸다 스윈튼 등 할리우드의 주연급 배우들이 적재적소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것도 굉장한 볼거리입니다. 누구 하나 앞으로 툭 하고 튀어 나오지 않고 '설국열차'라는 하나의 테두리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킵니다. 마치 열차안에는 자신의 자리가 있다는 메이슨 총리의 연설처럼... 영화 속의 상황은 자신의 정해진 자리가 불평등을 의미했지만, [설국열차] 배우들의 정해진 자리는 영화의 완성도를 높여 줬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한동안 [설국열차] 같은 영화가 또 나오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상업 영화가 아닌데 수백억이 제작비가 투입된다는 것도 힘들 것이고, 할리우드 주연급 배우들의 비중에 관계없이 출연해주는 우리 영화를 만나는 것도 힘들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지금 이순간 [설국열차]를 만났고, 그 열차에 탑승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로도 행복합니다.
우리는 지구라는 커다란 '설국열차'에 이미 타고 있다.
가진 자는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못가진 자는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우리 역시 앞칸으로 가기 위해 힘겨운 투쟁을 벌이고 있지 않던가.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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