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스크랩]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임병장, 혹은 임병장들

화훼장식기사 2014. 7. 17. 21:58

김용진

 

 

 

"엄마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요."
뾰루퉁해 보이던 찬미가 난데없이 한 마디 툭 던진다. 마침 수업이 시작되기 전이고 아직 다른 아이들이 오지 않은

시간이라 찬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저희 반에 늘 혼자 있는 아이가 있어요. 굉장히 뚱뚱하고 못생겼는데 아무도 함께 놀아주지 않아 혼자 밥 먹고 항

상 혼자 앉아 있어요. 벌써 한 학기가 다 끝나가는데 아직도 친구 한 명 없이 그러고 있는 게 딱해서 제가 친구해주

기로 했거든요."

가까이 다가가서 아이를 보니 상태는 훨씬 심각하더란다. 자신감도 없고 매사에 의욕도 없으며 학교에 오고 싶은

마음도 없다고 했다. 외모에 대한 열등감도 있지만 환경적인 문제도 있고 소심한 성격도 한 몫 하는 것 같았다. 그

아이는 현재 아주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한다

 

 

 

 

 

찬미도 한 때 심한 우울증에 빠졌던 적이 있었다. 찬미는 외모에 대한 열등감이 아주 심했다. 못 생긴 얼굴과 뚱

한 몸을 저주하면서 성격이 자꾸 폐쇄적으로 변해갔고 친구들로부터도 차츰 멀어지게 되었다. 아무도 찬미를 거들

떠 보질 않았고 소외감과 열등감에 사로잡힌 찬미는 먹는 것으로 자신의 욕구를 채웠다. 그러다 보니 갈수록 살이

고 친구들은 점점 더 멀어져 갔다. 친구들이 따돌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스스로 자신을 소외시키기도 했다. 무리

에 가까이 가지 않은 것이다.

 

어렵게 어렵게 자신을 극복해 냈지만 찬미는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파 눈물이 난다고 했다. 자신이 직

접 경험했기 때문에 친구가 겪고 있는 아픔을 온몸으로 이해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찬미가 붙들어준 친구는 지금

금씩 조금씩 마음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중이다. 

 

한 날, 그 얘기를 엄마한테 했다. 그런데 엄마의 반응이 칼날보다 날카롭고 무서웠다.

"왜 그런 애를 가까이 하는 거야? 제발 하자 없는 애들이랑 놀아!"

 

다른 엄마가 그렇게 말해도 이해 못할 일이지만 찬미는 자신의 엄마가 그렇게 말한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자신의 딸도 그렇게 아픈 시간을 체험했으므로 그걸 옆에서 지켜봤던 엄마가 어떻게 똑같은 처지

에 놓인 아이의에 그토록 냉정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벌써 삼 십 년이 흐른 일이다. 남동생이 초등학교 5학년 정도 되었을 때였던 것 같다. 동생이 아끼는 친구 중 두 명

은 유난히 키가 작고 공부도 못했으며 겉모습도 늘 꾀죄죄했다. 부모님은 그런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동생을 은근

히 못마땅해 했다. 어느 날, 그 아이들과 실컷 놀다 들어온 동생을 붙들고 기어이 한 마디 하셨다.

"넌 왜 그런 애들이랑 노는 거야?"

좀 더 괜찮은 애들이랑 놀지 않고 왜 그렇게 찌질한 애들이랑 노느냐는 말씀이다. 난 그때 우리 동생이 했던 대답을

지금도 기억한다.

"다들 공부 잘하는 아이, 잘난 아이들과만 놀면 걔네 같은 아이들은 누구랑 놀아요?"

동생의 압승이었다. 그 날 이후로 부모님은 동생이 누구랑 놀든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내 자녀가 기왕이면 좋은 환경에 있는 아이, 공부 잘하고 똑똑한 아이들과 어울리기를 바라는 건 인지상정일 것이다.

하지만 자녀에게 나보다 못한 사람, 뭔가 결핍되어 있거나 모자라고 부족한 사람,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돕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걸 가르치지 않는 세상이야말로 가장 크게 염려해야 할 사회적 병폐가 아닌가 싶다 .

 

요즘 세상에 하자 있는 아이들이 어디 한둘인가? 뚱뚱하고 생겼다고 놀림받다 스스로 외토리가 된 아이들도 있고,

가정적인 결함을 극복하지 못해 방황하는 아이들도 있다. 또 외모나 공부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주변 사람들로부

터 받은 상처를 극복하지 못해 하자가 생긴 아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이런 아이들에게 아무도 손을 내밀어

지 않는다면 이들이 과연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따돌림을 받든 말든, 상처를 입든 말든 다들 모른 한다

면 이들은 세상 모든 사람들과 대적하고 싶을 지도 모른다. 임병장처럼 말이다.

 

 


딸들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었다

저자
굄돌 이경숙 지음
출판사
청출판 | 2012-07-19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부모 없이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 이 책은 두 딸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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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굄돌의 내남없이
글쓴이 : 굄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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