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6.18~19.
가만가만 기억을 되짚어 가 뱀사골에 이르면
가슴이 설레며 기억이 계곡을 따라 즐거운 춤을 춘다.
10여년만의 뱀사골이여~!
놀토도 아니건만 토욜 들뜬 맘으로 튕겨 나가는 탄환처럼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와 배낭을 꾸린다.
산으로, 그래 그리운 지리산! 언제나 신비로운 지리산으로 떠나는 것이다.
지리산 종주팀이 다시 모였다.
9명이 15명이 되어 차가 1대 더 늘었다. 안사람들에게 지리산을 보여주고 싶었나보다
남해고속도로 서진주에서 대진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생림에서 빠져나간 일행은 몇몇 초행인 사람들을 위해
구형왕릉에 들러 잠시 특이한 무덤형태를 감상했다.
가락국 마지막왕의 무덤이라 추정되는 돌로 쌓아 올린 7곱 계단위의 무덤
장난기 발동한 일행들이 4번 째 계단의 장방형 구멍에 한 사람을 말로 가두어 넣는다.
모두 까르륵 산천의 초록들을 깨워 떼굴떼굴 굴러가게 한다.
구르는 바퀴를 타고 임천강 따라 흐르며
해박한 일행의 이런 저런 설명도 강에 같이 띄운다.
마천 지나면서 칠선계곡의 서암과 벽송사
눈발 흩날리던 어느 날, 칠선계곡 들다가 도중하차하던 그때 그대로 모두 안녕하다.
서암은 감추어 둔 보석처럼 빛났다.
자연석에 돋을새김 한 4천왕상과 인공과 자연이 어울려 내는 들어가는 입구의 장엄미
그리고 극락암 동굴 전체의 섬세한 조각은
‘돌을 떡 주무르듯 한다’는 말이 이 말이구나 싶다.
중산리나 장터목에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천왕봉의 모습을 올려 보며
고개 너머까지 난 길을 건너다보며 은둔의 계곡을 빠져 나온다
실상사는 하도 자주 보니 지나면서 흘낏
저기에 환경운동가 지율스님 계시니
안심하고 가끔씩 고사리 등의 유기농 농산물 주문해 먹는다.
어제는 미수가루 주문하라고 연락이 왔었는데...
감자는 굼벵이들이 다 파먹어 너무 험하다 한다
일성콘도에 짐을 풀고 인월에 나가 흑돼지 까만 털 꼭꼭 박혀 있는 삽겹살에
카~수가 있는데 노래방을 빼놓을 수는 없지.
음치야 고역이지만 그래도 그 분위기를 같이 즐기며 밤을 묻는다.
지난밤의 대브라질 축구가 ‘혹시나’가 ‘역시나’로 끝났더라도
옆방의 남성동지들도 아침엔 칼같이 시간 지켜 출발을 한다.
어둠 속으로 난 길을 따라 가던 차가 갑자기 휘청~
불빛에 드러난 물체는 날렵하게 생긴 고라니다!
저도 놀라 냅다 도로 가의 수로를 건너 뛰어 숲으로 달아난다.
놀란 가슴으로 내령 매표소에 도착,
어라 이게 왠 떡! 입산료 내라는 손이 보이지 않는다.
모두 일찍 산에 가는 뿌듯함에 입산료 절약했다고 입이 턱에 걸릴 지경이지만
성삼재에서 노고단 오르는 길목에 5시 20분인데도 몽땅 다 토해냈다.
아이고~오 김치국은...
지리산 종주 기억하며 화장실까지 거쳐 밝아 오는 신새벽 길을 나선다.
함박꽃나무에 함박웃음이 하얗게 물려 있다.
향기로운 산의 향기와 깨어나는 산새소리가
이렇게 반갑고 신날 수가 없다.
노고단 오르는 길 위로 확 터져 어깨를 어루만지는 하늘이 맑고
신선한 눈짓의 산봉들이 모두 건재하다.
혹시나 구름 속으로 모두 날아가 숨어버렸을까 저어 했더만.
코재를 지나 노고단 대피소 취사장에서 부산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산공기로 이빨도 치고 창포 보랏색 꽃으로 안경도 닦았다.
이제 저 푸른 불꽃 속으로 발길을 자근자근 태울 일만 있을 뿐.
걷는 즐거움,
다시 보는 녹색터널은 더욱 무성한 잎으로 생명의 열기를 내뿜고 있다.
아는 길이라고
내리막이 길어도 가파른 오르막이 곧 닥칠 것 같은 걱정이 이젠 없지만
첨 오는 사람은 그예 그 소리를 하고 만다.
함박꽃나무의 함박꽃은 함지박 만하게 여기저기 많이도 피었다.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피어나던 철쭉꽃은 흔적도 없고
동글동글한
이파리들이 녹색으로 짓이기듯 산을 덮고 있다.
<성삼재에서 뱀사골 중턱까지 보이던
함박꽃-토끼띠산악회에서펌>
돼지평전, 피아골 삼거리, 헬기장 지나
임걸령의 샘은 여전히 새파랗게 찬 기운으로 맛있는 물을 쏟아내는데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모두 물통의 물을 바꾼다.
곶감 나눠주던 동행은 그 찬물에 달콤하고 노란 참외 씻어 나눈다.
디파라치 별명 붙은 일행이 사진을 안 찍을 수가 없을 것이다.
지나온 노고단, 오른 쪽에 물러앉은 왕시루봉과 그 사이의 깊은 계곡,
앞을 막는 왼쪽 반야봉
초행에 바짝 굳었던 일행도 오늘은 첨 따라오는 안사람을 위해선지
넉넉한 모습으로 우스개 소리도 곧잘 한다.
노루목에 이르러
반야봉 거기 잘 있는지 확인할 팀과 바로 삼도봉으로 갈 팀으로 갈라진다.
이제 오르막은 반야봉 빼면 삼도봉 오르는 길밖에 없으니
아껴아껴 반야봉 오른다.
쉬지 않고 올라가는 남편 따라 가다 보니 좀은 숨이 턱에 차도
땀 같은 땀이 흐른다.
1732(때로 1728이라고 하기도 하고)m 정상에서 그 땀 식히는 기분은 직인다.
날씨가 맑아 성삼재에 빼곡히 주차한 차들이 보이고
인월에서 오르는 길이 지리산의 상처 같다.
우리 둘 뿐인가 하고 내려오려는 데 2명의 일행이 오고
너널바위길 내려오는데 다시 5명이 올라온다. 지나가면 두고두고 아쉬워 할 것이니까.
어긋난 일행도 삼도봉에서 모두 만나
시방이 산봉우리로만 보이는 별유천지에 맘도 쉬고
배낭마다 나오는 맛있는 것 고르게 나누면 뒤따라 웃음도 나온다.
숨을 고르고 지리산 종주에서 가장 낮은 곳인 화개재(1360m)로 내려 간다.
누군 세 번을 확인했는데 549계단이라고 낙서를 했지만
240m 유도데크 계단이 550인지 600인지 헤고 내려가다가는 헷갈릴 만큼 길다.
아이젠 신은 겨울등산을 위한 고무판위를 하염없이 내려가다
올라오는 사람들 표정을 보면 오히려 위로가 된다.
화개고개에 이르면 11.2km, 오늘의 일정 반은 걸은 셈이다.
화개재에서 반선 집단시설까지 12km의 계곡이 남았다.
200m 아래 뱀사골 대피소가 10여년전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놓여 있다.
초딩이었던 아들아이가 대학4학년이니 10년이 지났다.
10년 만에 다시 보는 뱀사골 계곡, 그땐 눈으로 하얗게 폭폭 싸여 있던 곳,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올라 와 엉덩이 스키를 타고 내려갔던 계곡이다.
다시 왔지만 계절이 전혀 다른 신세계를 만들어 놓았고
그사이 가깝게는 태풍 매미, 루사가 집중 호우로 쓰다듬었을 테니
그 옛 모습과는 다르게 느껴진다.
그 옛 모습보다 더 맑고 깨끗하고 더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1998년 7월 1일부터 금년 2005년 12월 31일까지 지난 7년에 걸친
계곡 휴식년제 기간으로 사람들에게 시달린 흔적들이 많이 지워졌기 때문이리라,
무릎, 발목, 발바닥이 무리를 느낄 만큼 길고 긴데다 돌길로 된 계곡이다.
성능 좋은 타이어라 하더라도 이 바위 길을 계속 내려간다는 것이 부담스럽지만
계곡의 바위와 그 위를 흐르는 풍부한 청류, 울창한 수림,
수많은 담소(간장소, 제승대, 평풍소, 뱀소, 탁룡소, 요룡대, 석실, 신선대)들이
그 보상을 하고도 남음이 있다.
아, 뱀사골!
와운교까지 6.8km 수도자의 기도하는 맘으로 수행자를 닮을 뿐이다.
내 언어는 침묵, 무념무사.
용이 되려는 꿈을 꾸지 않아도 되는 더 좋은 곳
내 낮은 생각일 뿐일까. 그야, 대붕의 뜻을 참새야 모르지.
와운교에서 700m에 천년송이 있다지만
이끼폭포도 계곡에 맘을 뺏겨 놓치고 말았는데 구태여 더 욕심을 내랴.
와운교에서 2.2km는 차량을 위한 도로와 그 차를 피할 수 있는
아름다운 자연관찰로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
당연히 자연관찰로를 택한다. 탁월한 선택이다.
인공과 자연의 절묘한 조화, 조화는 아름답고 선하다.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만든 이가 누구인지 복 받을진저.
그대, 지리산에 가려거든 여름 뱀사골을 가보라고......
권한다.
23km가 훨 넘는 10여시간 산행
반선에 남겨 둔 차로 성삼재로 차 가지러 간 남편들이 돌아와
다시 모여 그 얼굴들 쳐다보매 어디 욕심 한 점인들 꼬여 있을까!
선하디 선한 얼굴들을 산처럼 쳐다보며
88고속도로를 거쳐 우포 늪 뼈째 녹아드는 붕어찜으로 산행을 마감한다.
어둠은 향기처럼 내려 깔리고
인정은 별처럼 반짝이며 가슴에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