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해전'을 통해 본 이순신의 리더십에 대하여
'시대의 울림'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제17회 부천국제만화축제'가 개최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의 해방을 맞이했던 특별한 날 광복절에 이순신과 명량해전을 주제로 한 대담을 펼쳤습니다.
게스트는 개관 100일을 맞아 국립세종도서관에서 가장 많은 대출 건수를 기록한 대하역사만화 조선왕조실록 박시백 화백과 30년 간 조선만 연구했다는 신병주 교수, 휴머니스트 김학원 대표였습니다.
'명량해전'을 통해 본 이순신의 리더십, 박시백 화백에게 듣는 조선왕조실록발간기, 30년 간 조선만
연구했다는 신병주 교수에게 듣는 이순신의 리더십에 대한 대담을 청취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작업으로 평생을 만화가로 꿈꾸게 된 박시백 화백>
박시백 화백은 "조선왕조실록을 준비하면서 중간에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어요.
처음에 결심을 하고 나왔는데 1권이 나오기까지가 한 2년 정도가 걸렸어요.
그 과정에 공부도 하고 또 밑그림도 많이 그려보고 시안도 잡아보고 이런 과정을 쭉 밟았어요.
처음 제가 나왔을 때는 이런 걸 그리면 되겠다 싶었는데 막상 난 이렇게 준비했는데
어떤 출판사에서도 안 받을 수도 있는 거고 그럼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있었어요.
그래서 초반에 되게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제 자신에게 좀 가혹하게 다그쳤던 것 같은데 그 당시에는 1년에 두 권 반 정도 처음 몇년 동안은
그렇게 그렸던 것 같아요.
거의 마음에 여유없이 막 몰아쳤던 것 같은데 이 과정이 아무래도 힘들지 않았나 싶어요.
그리고 그렇게 계속 한다면 완주할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어느 순간 들면서 조선왕조 실록 작업으로 평생을 제가 만화가로 살수 있겠구나하는 확신을 갖게 해준 작업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향후에는 조선왕조실록과 관련해서 제대로 된 연표를 만들고 싶어요. 그걸로 조선왕조에서 벗어나서 마무리를 하고 싶은 생각입니다. 현재는 좀 쉬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박시백의 조조록은 역사교과서로서의 역할에도 일조를 한다고 높이 평가하는 신병주 역사학 교수>
30년간 조선왕조실록에 대한 연구를 해온 신병주 역사학 교수는 박시백 화백이 내 놓은 조조록에 대하여역사교과서로서의 역할에도 일조를 한다고 높이 평가를 했습니다. 조선왕조의 역대 등장 인물들도 박시백
화백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개발하여 멋지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했습니다.
그 중에 세종대왕과 이순신장군이 가장 뛰어나고 존경스러운 인물이라고 칭찬을 했습니다.
선조를 비롯한 주변인들로부터 시기와 질투로 모함을 받아도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충성을
다하는 이순신 장군의 남다른 의지가 높이 살만하다고 했습니다. 그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
있다"는 긍정적 마인드를 지닌 불멸의 이순신 장군의 기개를 본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혼신의 힘을 쏟아내는 이순신장군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했으면 더 큰 성과를 이루었을
것이라고 신교수는 안타까워했습니다. 500년의 역사 속에서 훌륭한 장수로 손꼽히는 이순신 장군의 위대한
리더십은 시대를 불문하고 모두가 배워야 할 덕목이라 했습니다. 전쟁에 패하여 황량한 곳에서도 이순신
장군과 싸운다면 모두가 함께 동참하겠다고 나서는 백성들이 부지기수였다고 합니다. 이장군은 백성들의
신뢰와 존경을 한몸에 받았던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시대를 이끌어가는 진정한 리더였던 것입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으로 손꼽히는 이순신 장군의 모델상>
청춘예찬 김가람 대학생 기자가 '명량' 영화를 보고 소감을 쓴 글입니다.
최근 할리우드 영화 아바타를 제치고 흥행순위 1위에 오른 영화 '명량'을 봤습니다.
2시간의 상영 시간 중에 1시간은 명량대첩이 일어나기 전 갈등 상황이 나오고 나머지 1시간은 전쟁 장면을
보여주었습니다.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배웠던 이순신 장군의 전투 방식을 영상으로 자세히 표현한 것
같았습니다.
조선보다 압도적인 수를 자랑하는 일본군을 철저한 전략을 통해 물러나게 한 이순신의 리더십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12척의 배로 어떻게 일본의 300척을 무찌를 수 있었을까? 그 이유 중 하나가
명량해협의 지형이었습니다. 이 해협은 좁아서 배가 한꺼번에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때문에 일본 수군은
전선 수는 많았지만 조선을 포위할 수 없었던 것 입니다.
또 이곳은 조류의 흐름이 빨라 이를 이용해 충돌 공격을 한 결과 명량해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상대의 장단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전투에 임한 이순신의 자세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반드시 살 것이나 살려고 한다면 죽을 것이다.' '전선의 수는 비록 적지만 신이 죽지 않는
한 적은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도 인상 깊었습니다.
<대담을 마치고 시민들에게 싸인을 해주기 위하여 준비하는 박시백 화백의 모습,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새 창조의 참가치'라는 평을 받기도 함>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팟캐스트 역사 토크>
청춘예찬 김가람 대학생기자가 쓴 글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많은 사건들로 인해 혼란스러운 시점에서 명량을 통해 한명의 리더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일깨워주는 것 같습니다. 현재 나라의 상황과 영화의 내용, 개봉시기가 적절히
맞아 떨어져서 명량이 엄청난 흥행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갑자기 과거로 돌아가고 일본군 앞에 조선의 배가 나타나면서 끝이 납니다. 이 장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해서 알아보니 명량대첩보다 먼저 일어난 한산대첩이 다음에 영화로 나올
것이라는 예고라 합니다.
역시 이순신장군이 노량대첩에서 전사했는데 앞으로 영화가 더 나오지 않을까라는 예상을 했습니다.
'명량','한산','노량' 이렇게 총 3부작으로 나온다고 합니다. 전 국민이 알고 있는 이순신 장군의 '내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이 한마디가 영화 '노량'에서 정말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이순신 역할을 맡은 최민식은 촬영 중 대본 리딩을 하면서 실제 이순신에 대해 정말 많은 연구를 하고
감정을 이입하여 울기도 하고 쓰러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노력들이 그대로 영화에 나타나 정말
최민식 말고는 이순신 역할을 소화할 사람이 없다고 느껴졌습니다.
<위풍당당 이순신 장군의 포효하는 그림 아래에서 대담을 나누고 있는 3인방>
<조선왕조 실록을 번역하면 원고지 양이 63빌딩의 세 배라고 하네요>
<박시백 화백-다양항 계층의 학자들에게 만화와 역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정 받고서리>
청춘예찬 김가람 대학생기자의 소감입니다.
명량을 본 다음날인 15일에는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서 '이순신과 명량해전'을 주제로 역사 토크가 열려
다녀왔습니다. 대하역사만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저자 박시백 화백과 역사학자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펴낸 휴머니스트 출판사 김학원 대표가 나왔습니다. 행사는
이순신과 원균, 선조임금에 대한 인물이야기, 명량해전, 질의응답 순으로 진행됐습니다. 명량해전은
영화 '명량'을 보았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쉬웠습니다.
이순신과 세종대왕에 대한 인물평에서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박시백 화백은 "이순신과 세종은 하늘이
내렸다고 밖에 볼 수 없을 정도로 천재라고 했습니다. 성군의 이미지가 강해 비틀어 보려고 세종실록을
공부했는데 연구할수록 더 어마어마하고 더 대단했다."고 표현했습니다. 나도 다시 한 번 이 두 분의
위인전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원균에 대한 선조임금의 평가도 기억에 남았습니다. 원균은 머리는 나빴지만 선조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했기 때문에 선조의 총애를 받았다고 합니다. 반면 이순신 장군은 소신이 뚜렷했기 때문에 선조의 눈 밖에
났다고 합니다. 이순신은 사전에 충분히 정보를 취합해 작전을 세웠지만 원균은 척후선도 사전 정보없이
대규모 선단을 출동시켜 강행군을 했답니다. 이런 결과 원균이 출정한 칠천령 전투에서 조선 수군이
괴멸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이순신 장군은 3도 수군통제사로 복귀했다는 말을 듣고 실력의 중요성을
느꼈습니다.
신문사에서 만화를 그리다 조선의 역사를 만화로 그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신문사를 그만두고
만화작업에 전념했다는 박시백 작가의 집념도 대단했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도전의 길을 택해 성공했기에 자극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번 대담을 통하여 나의 미래를
설계하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백성 바라기 이순신장군과 구루지마를 놓고 하고 싶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실현하며 잠시 즐거운 순간을>
<역사에 관심을 보이는 시민에게 정성을 다해 싸인을 해주는 신병주 교수(중앙)>
<부천타임즈 양주승 대표도 열띤 취재에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서리>
<아이, 어른, 모두가 줄을 서서 싸인도 받고서리..>
<공감정책 브리핑 최정애 기자도 적극 나서서 취재하느라 바쁘고..>
<조선엔 이순신이 있었다>
<청춘예찬 김용옥 어머니 기자와 이쁜 공주님>
청춘예찬 김용옥 어머니기자와 이쁜 공주가 부천을 찾았습니다.
부천 만화박물관 축제를 관람하며 작은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부천만화박물관축제에 다녀오다.
부천만화박물관축제가 17회를 맞이했는데도 이웃인 인천에서 처음으로 다녀왔다는 것에 민망하기도
했어요. 딸애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외숙모하고 갔던 기억이 나지만, 5년이나 지난 지금은 그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라고 했습니다.
만화저작권에 대한 안타까움도 한 마디 적어 붙이고, 한국관에서는 팔찌도 만드는 체험도 했습니다.
조선 왕의 리더십 경험도 하면서 조선왕조신록전에서는 소현세자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며,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한 글을 적어서 붙이기도 했답니다. 만화박물관축제를 보면서 어린 시절에 보았던 반공만화도
보았어요. 우리나라의 역사를 만화로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어요.
축제로 인해 한 켠에서는 상술이 보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역사와 연계한 부천만화축제에 박수를
보내는 마음이랍니다.
<조선왕조실록관에 들러서 격려의 글을 보내는 젊은 청춘 짱짱짱 >
<이순신 장군이 자랑스럽게 승리를 이끈 대전을 바라보는 젊은 청춘 이뽀유>
<부천 만화축제장에서 용병들과 멋지게 한컷 찰카닥 ~! 기념 촬영을 하는 28청춘 조우옥 어머니기자>
역사는 지나간 과거이지만 제대로 파악하고 배워야 합니다.
역사가 말하는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고 간과 한다면 또 다른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현시대에도 이순신 장군처럼 위대한 인물의 리더십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습니다.
개인의 이득을 탐하지 않고 나라에 충성을 다하는 진정한 리더로 거듭나야 되겠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을 바라보며 의식있는 지도자들 모두가 새로운 각오로 환골탈태해야 할
시점으로 느껴졌습니다. 시대의 울림에 귀를 귀울일 줄 아는 리더가 되어야겠습니다.
<공동취재 : 청춘예찬 김용옥 어머니기자, 김가람 대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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