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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워킹홀리데이 다녀온 딸아이의 놀라운 변화

화훼장식기사 2014. 5. 29. 11:45

김용진

 

어떤 모습일까? 얼마나 변해 있을까? 그래도 외국 물 먹었다고 좀 더 멋진 모습으로 돌아올까? 9개월 만에 돌아

오는 딸을 마중가지 못하고 집에서 기다리며 이런 저런 상상을 했었다. 본디 치장하는 일에 관심있는 아이는 아

니었다. 워킹홀리데이 갔던 뉴질랜드의 삶이 편편치 않은 건 이미 눈치채고 있었지만 그래도 내심 기대는 되었

다. 그런데 집으로 들어서는 아이의 몰골을 보니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피부는 검게 그으른데다 윤기를 잃었고

차림도 추레하기 그지없고. 그동안 미장원은 한 번도 안 갔는지 짧게 자르고 나갔던 두발은 길게 자라 투박한

끈으로 질끈 묶었다. 

 

본인이 직접 설명하지 않아도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금세 헤아려진다. 수업 중이라 딸아이를 마중갔던 친구

와 밖에서 밥을 사먹고 들어오라고 할까 하다 그동안 얼마나 엄마가 해준 밥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싶어 딸아이

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상을 차려줬더니 둘이서 깔깔거리며 맛있게도 먹는다. 그러더니 내리내리 잠이다.

고 또 자고.

 

      딸아이가 찍어 온 뉴질랜드 풍경

 

워킹홀리데이는 환상이었다. 외국인들 틈바구니에서 현지영어를 익히겠다는 꿈도 어느 순간 날아가 버렸다.

현실이 사람을 속였다. 워킹홀리데이 학생들에겐 한 곳에서 겨우 2개월만 일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쾌적하고

깨끗한 환경에서 멋지게 영어를 구사하며 돈을 버는 건 언감생심이었다. 그러다 보니 죄 허드렛일이거나 힘들

고 궂은 들 뿐. 무거운 짐가방 두 개를 끌고 수없이 옮겨 다녀야 했다. 그렇게 돈을 벌어 방값을 내고 생활비

를 감당하기도 벅찼다.

 

그러다 향수병이 왔다. 일이 힘들어 못견디는는 게 아니라 엄마아빠가 보고 싶어, 가족들이 그리돌아오고

싶었다. 엄살이 많거나 나약한 아이가 아니라는 걸 잘 알기에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냥 돌아오라 하고 싶었다.

그 아이가 휴학을 하고 워킹홀리데이를 나갔던 애초의 목적을 알지만 얼마나 힘들면 그럴까 싶어 어떤 것도 

따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큰아이가 말렸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돌아온다면 그 패배감을 어떻

게 감당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렇게 주저앉은 아이는 9개월을 채우고 돌아왔다. 돈을 모아 3개월 동안은 주변나라를 여행하겠다는 꿈이 있

었지만 접었다. 아마도 자신이 꿈꾸던 여행은 언제라도 또 하지 싶다. 워낙 여행을 좋아하고 가고 싶은 나라에

관해 이미 공부해 두었기 때문에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딸아이가 찍어 온 뉴질랜드 풍경

 

 

학교에 다닐 때 딸아이는 학생들에게 개인레슨을 하거나 피아노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돈을 벌었다. 그

러면서도 틈날 때마다 다른 아르바이트 일도 했다. 그렇게 돈을 모아 학비를 내거나 여행 경비로 썼다. 어떤 일

이든 목표를 세우면 악착같이 그 일을 해내 다들 혀를 내두르게 했다. 그런데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온 딸아이는

더 달졌다.

"사는 일이 만만치 않았어요. 뉴질랜드 생활이 정말 힘들었지만 그 시간을 통해 참 많은 것들을 배웠어요. 가족

이 얼마나 소중한지, 엄마가 하시는 일들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토요일이면 가족들이 모처럼 늦게까지 잠을 자는데 내겐 그렇게 녹록한 시간이 아니다. 아침 8시 30분부터 수

업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난 딸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내게 손짓을 보낸다. 무슨 일인가

나갔더니 안아 달란다. 나 일어났으니 엄마가 안아달라는 뜻이다. 눈 뜨고 나서 여기가 우리 집이구나 싶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고 한다. 설거지통에 그릇들이 담겨 있으면 도와달라 부탁하지 않아도 덤벼들어

딱하니 설거지를 한다. 엄마가 바빠서 끼니도 챙기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면 우선 입맛이라도 다시라며 먹

것을 겨다 주고, 피곤하겠구나 싶으면 커피를 타다 주기도 한다.

 

딸아이의 일상도 엄마 못지 않게 빡빡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고, 학원 수업이 없는 날은 종일

읽거나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하는데 집에 있을 때면 으레껏 청소를 도맡는다. 빨래를 널거나 개는 일은 두

할 것도 없다.

 

 

   딸아이가 찍어 온 뉴질랜드 풍경

 

 

카드값이 제법 나와 한 날 넌즈시 얘길 했더니 이렇게 응답한다. 

"엄마, 이젠 아무 걱정 마세요. 저 원래도 경제관념이 흐린 사람이 아니었잖아요? 그런데 뉴질랜드 갔다 오니

돈을 못 쓰겠어요. 손수 돈 벌어서 방값 내고 생활비 내는 일이 보통 어려운 게 아니더라구요."

원래도 그런 아이는 아니었다. 부모가 풍족하게 용돈을 주지 않기 때문에 정말 힘들게 돈을 벌어가며 학교를

다녀야 했다. 그러다 보니 돈 쓰는 일도 아주 규모있었고 돈 관리 또한 철저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와도 또

다른 것이다.

 

음대생인 딸아이는 지금 한 학기 공부를 남겨 두고 있다. 그런데 학교를 마친 다음 대학원에서 관광을 공부

하고 싶어한다. 졸업 후 음악과 관광을 접목하여 자신의 일을 해보겠다는 구체적인 인생 설계를 하고 현지영

어를 익히기 위해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왔다. 그런데 그것이 복병(?)이었던 것이다. 현지영어도 익히고 돈 벌

어 주변국을 여행하겠다는 야멸찬 포부를 안고 떠났지만 아이는 그곳에서 인생의 쓴맛을 제대로 보고 돌아왔

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 않는가. 고생스러웠던 시간들이 딸아이를 영글게 하고 한층 더 성장시켰을 것이

다. 이의 앞날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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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었다

저자
굄돌 이경숙 지음
출판사
청출판 | 2012-07-19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부모 없이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 이 책은 두 딸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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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굄돌의 내남없이
글쓴이 : 굄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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